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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메이카 출신의 세계적인 레게 가수 밥 말리의 전기 영화 <밥 말리:원 러브>가 3월 13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. 유명가수이지만,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밥 말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보고 그의 대표곡도 들어보도록 한다.
밥 말리는 누구?
본명은 로버트 네스타 말리(Robert Nesta Marley)로 1945년 2월 6일에 영국령 자메이카에서 태어났다. 아버지는 당시 60세의 영국군 백인장교였고, 어머니는 19세 흑인 여성이었다. 평범한 부부는 아니었고, 매우 가난했다. 10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고, 밥 말리는 12세가 되던 해 어머니를 따라 빈민가로 이사했다. 빈곤과 범죄가 난무하는 환경에서 학업에 집중하기 어려웠던 밥 말리는 15세에 학교를 중퇴하고 용접공으로 일했다.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처럼 힘든 상황 속에서 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뮤지션이 되기를 원했다.
16세가 되던 해 밥 말리는 친구 두 명과 함께 가수로서 정식 활동을 시작했다. 밥 말리와 웨일러스라는 이 그룹은 1970년대 영국에서 활동하면서 레게 음악으로 전 유럽을 뒤흔들었다. 당시 자메이카의 토속음악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. 또한, 1930년대 자메이카에서 창시된 래스터페리교라는 신흥종교가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. 이후 1980년 11월 뉴욕 시의 한 호텔에서 세례를 받고 오리엔트 정교(정통 기독교)회로 개종했다.
저항정신, 평등, 사랑, 평화와 인권에 대한 노래를 부르던 밥 말리는 수 차례 위협을 받았다. 자메이카에서 정치 세력의 대립으로 폭동이 일어나자 1976년 반대를 무릅쓰고 고국에 돌아와 스마일 자메이카 공연을 준비했다. 공연 이틀 전에 괴한의 습격을 받았는데도 붕대를 맨 체 공연을 강행했고, 이후 영국으로 피신했다.
평소 축구를 즐겨했던 그는 1977년 유럽 투어 중 프랑스 기자들과 축구경기를 하다가 발에 부상을 입었고, 이것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암세포를 발견할 수 있었다. 그는 암치료를 거부하고 광범위한 공연 일정을 소화했다. 이것은 그의 몸 상태를 악화시켰다. 1979년 9월 그는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조깅하다가 쓰러졌다. 암은 그의 뇌, 폐와 심장에까지 퍼져 있었고, 8개월 후 81년 5월 11일 36세 나이로 사망했다.
참고로, 그는 1966년 결혼한 부인 리타 앤더슨 외에 6명의 애인이 있었고, 부인 리타와의 사이에 세 아이를 두었다. 리타가 첫 결혼에서 낳은 세 아이들을 입양했고, 함께 낳은 아이들과 혼외 자식들을 포함하여 밝혀진 것만 최소 11명의 자녀를 두었다.
★ 밥 말리 대표곡 원 러브(One Love) 듣기>>
★ 밥 말리 대표곡 노 워먼 노 크라이(No Woman, No Cry) 듣기>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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